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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의 지도> 나스벳의 '동서양 문화' 수렴에 관한 소고
    생각/단상 2018. 1. 2. 01:55

      니스벳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중간’쯤 수렴되는 게 가장 타당한 견해라고 했다. 주목할 것은 ‘중간’이다. 수렴은 여러 갈래의 사상과 의견을 한 데 모으는 걸 뜻하나, 나스벳이 전제 조건에 넣은 ‘중간’은 수렴의 범위를 제한한다. 수렴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이미 한쪽 의견이 득세한 상황에서 소수 의견을 수렴하여 득세한 의견을 보충하는 식의 수렴, 소수 의견을 모으고 모아 의견을 집대성하는 수렴, 절충점을 찾아 중간 지대에서 융합을 추구하는 수렴이 있을 것이다. 니스벳이 강조한 ‘중간’은 세 번째 수렴에 가까울 것이다.


      나스벳은 저서 『생각의 지도』에서 동서양의 문화를 구분하고 비교했다. 객관성을 도모하기 위해 통계를 넣는 것도 빠뜨리질 않았다. 책은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던 고대 그리스 문화는 자연스레 논쟁의 문화가 꽃피웠지만, 자신을 주변 환경에 맞추도록 수양하는 일을 중시한 중국은 집단의 자율성에 우선을 뒀다”고 말한다. 즉, 서양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보아 개별의 속성을 중시했고, 동양은 인간을 사회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 파악하여 자유보단 조화에 무게를 뒀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책은 서양은 도려내는 수술로 사람을 치료했고, 그에 반해 동양은 침술이 치료를 대신했다는 걸 든다. 아울러 개인주의적 광고는 미국인에게, 집합주의적 광고는 한국인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통계를 보여주면서, 동양인들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인간관계의 조화를 추구하지만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걸 알린다. 또 서양인들은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나, 동양인들은 많은 인과적 요인들에 주의를 기울인다고도 덧붙인다.


      이를 기반으로 저자는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특질이 향후 결합되는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는 견해에 이른다. 그 결합은 ‘중간’이요, ‘융합’이다. 그러나 결합, 나아가 ‘중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나스벳은 책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어떤 학생들은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며 “서양 독자들도 그런 느낌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스벳은 결합의 방식이 상호보완임을 드러낸 셈이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과연 상호적으로 결합이 될 것인지, 그 결합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책이 소개한 일본은 자본주의를 수용한 지 이미 100년이 경과한 나라다. 책은 일본이 서구적 가치인 독립성과 자유, 합리주의가 강하게 뿌리박혀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 물론 일본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 팀 정신 등의 동양적 문화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동양의 특질 중 하나인 조화와 개인보다 집단에 우위(전체주의나 사상적 집단 우위가 아닌 팀 정신)를 두는 방식이 서양에 보편적으로 이식된 적이 있던가? 일본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자본주의를 겪은 나라들은 개화 이후부터 줄곧 서양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서양이 전파한 문화를 체득했지만 서양은 어떠했는가.


      동양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일방적인 관계 아래에서 자본주의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동양의 나라들은 청과 영국의 아편 전쟁, 당시 미국의 일본에 대한 통상 압력, 서양의 문화를 이식한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강압이 이뤄지면서 서양식 이론을 습득하고 문화를 받아들였다. 반면에 동양의 문화가 서양으로 전파된 경로는 대개 경제적 실리에 입각한 수입과 수출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서양 국가들이 동양의 문화를 수입해 자국의 체계에 이식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서양 문화 전파의 태생부터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더구나 동양 문화의 의학으로 소개된 한의학은 비교적 뒤안길에 머무른 반면, 서양 의학은 적극적으로 유입되어 동양인들의 상당수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서양이 내세운 절제술은 이미 동양에서 통용이 된 지 오래고, 장기와 육체, 정신의 관계를 중시했던 동양의 침술은 서양 의학에 밀려버렸다. 이것은 한 단면에 불과하다. 책이 서양식 문화로 근거를 들었던 개인주의나 개성 역시 동양에 시대를 타고 급속도로 파생됐다. 한국만 해도 IMF가 지난 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와해되고, 개인주의가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개인주의가 개인에 대한 존중을 고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익의 측면이 분명 있으나 동서양 문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 역시 서양 문화의 영향임을 마냥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서양은 지금도 정치적, 경제적 파워를 토대로 고유의 문화를 타국에 전파한다. 서양이 동양에 문화적으로 뿌리내리려 한 데 비해, 동양은 서양에 그러한 영향을 끼치려 해도 지정학적으로나, 역학적으로 쉽지가 않았다. 결국 니스벳이 말한 문화의 수용은 일방적인 토대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며, 과거의 예가 이를 증명한다. 문화가 중간쯤에서 수렴하고 결합을 하려면 동양에서만 일어날 게 아니라 서양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책은 이 불평등한 관계를 인정이라도 하듯, 서양에서 동양의 문화가 이식되고 뿌리 내리는 과정은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전망도 있을 것이다. 서양권의 축소와 동양권 국가들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서양식 문화 위주인 상황이 역전될 수 있을 거라고. 허나 중국이 G2에 반열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미 중국은 세계화의 물결을 받아들여 경제의 성공을 이뤄낸 나라다. 그 물결 안엔 서양식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중국이 1970년대 개혁, 개방의 기치 아래 성장을 거듭해온 와중에도 중국의 문화, 동양의 문화가 서양에 퍼져 주류로 인식되던 과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니스벳이 말한 동서양 서로의 문화 수용, 또 문화의 ‘중간’ 수렴은 ‘중간’이란 말의 함의와 달리,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문화 이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중간’ 수렴에 대한 기대는 합당하지도 않고, 부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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