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수 감독 연구(1)영화 2020. 3. 19. 14:41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이전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 아래 단절과 억압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을 일종의 치부 정도로 여기던 시각이 있었다. 사업주로부터 임금을 떼먹혀 노동청에 피해를 신고해도 별 구제를 받지 못하던 노동자, 분단의 간극 가운데 그만 불손 세력으로 낙인이 찍혀 억압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됐지만 성장의 과실에서 소외돼 허덕이던 계층까지. 민주화 이전 한국 사회는 ‘경제 성장’과 ‘정권 안위’라는 명분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사소히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1987년 봇물처럼 터진 민주화 항쟁과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은 그러한 경향의 지속을 막아보려는 사회적 몸부림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기조의 변화는 한국 영화의 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80년대 한국 영화는 ‘뉴 웨이브’라 불리는 변화를 맞는다. 말마따나 과거 신파와 액션 위주의 서사에서 탈피한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이었다. 변화의 서곡에 함께한 영화감독엔 장선우, 이명세 등이 거론되지만 그 중에서도 박광수를 빼놓을 수 없다. 박광수는 시대가 외면했던 부조리를 영화로 응시한 감독이다. 1982년 18분 단편 영화 <장님의 거리>로 영화 제작에 발을 들이게 된 박광수는 1988년 첫 장편 영화 <칠수와 만수>를 내놓으면서 박광수란 이름을 충무로계에 각인시킨다. <칠수와 만수>는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영화사가 소련 영화를 미는 바람에 7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쳐, 결국 흥행 타이틀을 거머쥐진 못했다.
그러나 영화는 현대사가 치유하지 못한 아픔을 당시 동시대 청년 칠수와 중년의 만수를 통해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분단 체제의 현실과 그 체제에서 소외된 이를 묵직하면서도 ‘웃프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박광수는 분단 체제와 탄광 노동자의 현실을 조망한 1990년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에 이어 한국인 입양과 좌우 이데올로기 문제를 접목한 1991년 <베를린 리포트>, 한국전쟁을 지나며 고착화 되어버린 시대적 앙금을 직시한 1993년 <그 섬에 가고 싶다> 등 각본과 연출을 맡아, 외면해왔던 시대상을 탐구하는 감독으로 각인된다. 1995년엔 한국 노동운동의 시초격인 전태일을 그린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관객 50만 명을 동원, 흥행에 성공하면서 박광수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담보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
박광수의 영화적 시도와 성과는 지난 격동의 세월 생채기가 나버린 시대적 아픔을 환기하는 동시에 주로 소외된 이를 조망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영화가 문화로서 그저 소비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고민을 동시대인과 함께 안고 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엔 뜻 깊은 것이다. 박광수가 영화로 그려냈던 노동자에 대한 비인도적 대우나 물신주의에 따른 인간성의 악화, 이데올로기에 희생되는 순진무구한 이들은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던져주는 구실을 한다. 즉, 박광수가 남긴 영화는 현재와 미래에도 회자될 가능성이 있으며, 과거와 미래를 순환하면서 한국 사회에 잔존한 부조리와 비극을 되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본 ‘작가연구’에서 박광수 감독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배경이다.
참고자료-박중훈, 「칠수, A매치 데뷔골의 감격」, 씨네21, 2009.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