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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미디어와 여성
    미디어/담론 2013. 1. 3. 13:29

    고동완(kdw1412@nate.com)


    여성에게 미디어는 어떤 존재인가. 그 중 미디어 속 광고의 모습은 안토니 코르테즈가 지적했듯 부족함을 유도하며 선동과 자극에 열을 올린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지금의 여성 또한 광고의 종속에 자유로운가. 미디어의 광고는 또 다른 자본을 형성하며 여성들을 화장품과 미용, 성형으로 이끌게 하는 주요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광고에선 흠결 없는, 조명과 CG로 다듬어진 모델이 나와 미의 향연을 보여준다. 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모델들의 모습을 흠모하게 되며 추종의 모습을 띤다. 결국 여성을 중심으로 놓고, 패션과 미용, 성형의 상업들이 팽창하며 또 다른 자본의 종속을 유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과 모습들은 한스 엔첸스 베르거가 말한 인류가 미디어의 의해, 미디어에 의한 상품과 생산품으로 비춰지는 결과와 몹시 흡사하다. 이것은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드라마는 광고에 비해 모델의 완벽한 모습을 덜 구현하더라도 지속적인 대중 노출을 통해 특정 모델에 대한 동경과 애정을 파생시키며 이러한 동경과 애정은 자신의 정체성과 혼재시키려는 현상을 부추긴다.
    닐 포스트먼은 '놀라운 신세계'에서 혁슬리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들의 사고 능력을 갉아먹는 기술들을 숭배하게 되는 시간이 오고 있다며 이것은 soma의 약물이라 지칭한 것을 텔레비전으로 분석하고 있다.(이성주, 이설희 공역) 텔레비전과 여성 채널이 가지는 관계,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종속의 현상과 맞아 떨어지는 주장이다.
    95년 케이블 출범 이후, 대기업 자본과 공중파 자본이 유입되면서 여성 채널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무렵 한 대기업 자본이 여성 채널을 개국한 후, 여러 자본들이 앞다퉈 여성 채널 개국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성 채널은 표면적으로 '여성을 위한', 여성의 안식처 형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채널 다수는 전파의 중심을 미적인 부분에 둠으로써 여성들로 하여금, 미와 연관된 산업에 지출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혁슬리가 soma를 지칭하면서 밝힌 것처럼 여성들이 텔레비전의 컨텐츠를 숭배 혹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여성 자신이 미적 자본의 부속품으로 전락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채널뿐만 아니라, 주요 일간지에서 발행하는 여성 잡지도 같은 맥락에서 모델의 광고들과 미적 자본의 생산품들로 대다수 내용이 채워지는 현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디어는 여성들로 하여금 완벽한 미의 추구를 은연 중에 촉구하게 되며, 이를 수용한 대중들은 여성들에게 재차 미를 요구함으로써 여성은 외모 지상주의가 공고화되어가는 사회에서 미적 자본의 유도에 쉽게 이끌리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성형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미디어는 여성의 미를 주요 상업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모 지상주의를 방관,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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