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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재수 과정과 수기
    생각/단상 2013. 1. 30. 02:59

     수기라 함은 보통 성공의 유무를 척도로 삼아 쓰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성공이건, 중간이건, 실패건 수기는 체험하고 겪은 내용을 진실되게 적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꾸밈없이 수기를 적고 거기서 배워갈 것은 무엇인지 잠시 상념에 잠기는 것 자체만으로도 뜻 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재수 과정들이 머릿 속에서 휘발되기 전에 글을 적기로 결심했다.

     

    재수는 어떻게해서 결심하게 되었나?

     고3 시절, 면접을 두 차례 봤었다. K대와 S대. K대 같은 경우, 언론 계통 학과에 지원하여 수시에서 1차를 합격하고 면접을 보았다.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면접관의 질문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으며 이후 심리적 타격과 불안으로 수능 마저 망치는 결과를 맞이했다. 9월에 받은 성적에 비해 수능에서 백분위의 폭락이 컸으며 어릴적부터 가고 싶어했던 K대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수능 실패 후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도서관에 매일 드나들며 통탄 속에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이후 S대 면접이 다가왔다. 간단한 형식의 문제를 풀고, 면접관 질문에 답하는 면접이었다. 물론 인성면접의 형식도 곁들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럭저럭 맞춘 듯 싶었으나 면접 분위기는 서서히 냉랑해져갔다. 마지막, 면접관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항상 정의가 무엇인가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모든 대학에서 떨어지고 벼랑끝에 내몰린 상황입니다." 라고 외쳤으나 탈락의 분위기로 기운 상황이었다. 여차여차해서 서울 소재 모 대학을 정시에서 합격하긴 했지만, 뭔지 모르는 감정에 휘어잡혀 며칠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한번 더 입시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평소 꿈꿔왔던 꿈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재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재수의 과정

     이른바 독학재수를 할 것인가, 학원에서 재수할 것인가 고민했다. 독학재수는 자체 공부 시간 확보가 의지가 있다면 용이하다는 것이 장점이고 학원 재수는 공부에 있어서 끈기와 정신력 증강을 북돋아준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다만 높은 학원비와 급식비는 가정에게 부담을 지우진 않을까 걱정했다. 학원비와 기타 제반 비용을 지원 받은 이상, 전력을 다해서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2월 경, 노원역 근처 한 재수학원에 들어갔다.(현재는 은행사거리로 이전하였다.) 어찌됬든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상대적으로 잘 봤던 9월 모평 성적을 제출해서 2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2월

     수능이란 무엇인가, 출제 메뉴얼 등을 차근차근 인식하는 단계였다. 흔히들 초반에 극심(?)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면 후반에 지친다라는 통설이 있었지만 나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였다. 강사들의 도움되는 말들과 교과 내용들은 문제집, 공책, A4에 모두 적어 기록했고 반복, 또 반복 복습했다. 쉬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1교시부터 정규 강의시간이 마무리 되는 시점까지, 쉬는 시간은 모두 공부 시간을 위한 것이었다. 휴식 시간은 오직 점심을 먹을 때였다. 당시 담임과 약속했던 것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학원에서 잘 경우, 처벌을 받겠다고 말이다. 그 약속은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맺은 것이었다. 이후 수능 끝날 때까지 취침 전에 잠을 자는 경우는 없었다. 학원은 평소 아침 출석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 사탐 공부에 매진했으며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는 강의 내용을 차근차근 복기하였다. 저녁 자습 시간때는 매일 1시간 정도씩 꾸준히 언어 공부에 투자하였고 전체적으로 언, 수, 외, 탐이 밸런스가 맞도록 공부하였다. 수학은 40%, 외국어는 30%, 언어는 15%, 사탐도 15% 정도로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사탐은 근현대사, 정치, 한국지리를 택했다. 근현대사는 평소 아는 지식의 종합체였고 정치는 흥미가 있었던 과목이었으며 한국지리는 고등학교 내내 공부했었던 것이기 때문에 선택하였다. 사탐 선택의 기준은 첫째, 흥미의 여부로 가늠해야 할 것이며 둘째, 축척된 지식이 어느 정도 되는가로 판가름 지어야 할 것이다.

     

    3월

     과목별 밸런스를 꾸준히 유지하였다. 어느덧 3월 첫 사설 모의고사를 치렀다. 언어가 쥐약이었으나 이때 백분위 99% 성적을 받는다. 나머지는 사탐을 제외하고 보통이었다. 이때 허점이 드러났는데, 수리 문제 풀이의 정밀함 부족과 영어 듣기와 어법의 난국이었다. 사탐은 매일 한 시간씩 투자하여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서 정밀함은 계산 오류, 문제 인식의 오류이다. 이 오류를 타파하고자 다양한 수리 문제를 접해야한다는 것을 인지했으며 수능 수리 기출을 찬찬히 재복기해야한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영어 듣기는 학원 자체에서 아침 방송으로 진행하였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여 점심 시간에 자체적으로 EBS 교재를 가지고 영어 듣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법은 우선 EBS 외국어 교재를 풀며 정리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4월

     초심을 잃지 않았다. 꾸준히 노력했다. 학원이 밤 11시에서 10시에 끝나는 것으로 바뀌어 자습 시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를 위해 학원 인근에 위치해있던 도서관에서 끝나자마자 추가적으로 1시간 자습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4월 사설 모의에서 언어 점수가 폭락하였다. 난감했다. 언어 과목 특성상 폭락한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다각적 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이른 아침에 사탐을 공부했던 방식에서 언어 시험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언어 기출을 공부하는 것으로 변경했으며 사탐은 밤에 공부하는 것으로 계획을 일부 수정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대 언어 기출 비문학 지문을 꼼꼼이 읽으며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언어의 공부 비중을 늘렸다. 수리와 외국어는 평상시처럼 공부했다.

     

    5월

     언어의 백분위는 소폭 상승했으나 수리와 외국어 백분위는 요지부동이었다. 맞출 것 같으면서도 틀리는 문제가 여럿 발생되어 난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수능까지 얼마 안남았다는 위기 의식을 5월에 이미 가지고 있었기에 절치부심하였다. 우선 추가적으로 공부 시간을 확보해야되겠다고 판단하여 인근 독서실을 학원 마치고 가기로 결심했다. 말수 자체를 더더욱 줄였다. 짝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의아함이 생길 때 인근 아이들과 의견만 교환하였고, 잡담 등은 모두 제하였다. 언, 수, 외, 사탐의 나만의 공부 방법론을 믿고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갔다.

     

     그런데 위기의 순간이 닥쳤다. 나는 낌새를 바로 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했다. 나는 그때부터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첫째는 나와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직접 말을 하기엔 껄끄러울 수 있으니 편지 또는 쪽지를 통해 따로 불러내어 이야기해서 수능을 마치고 인연을 이어나가자는 생각, 둘째는 이른바 무시하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무시하는 건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불가능했다. 우선 첫째에 초점을 맞추고 인사 정도는 주고 받았다. 그녀는 매우 착했다. 그것은 내 이상형과 부합되는 부분이었다.

     

    6월

     6월 모평을 볼 때 외국어 듣기를 푸는 도중, 뒤를 슬쩍 봤다. 나는 부끄러웠고 복잡한 심경이 밀려올라왔다. 6월 모평 결과는 언, 수, 외 모두 백분위가 소폭 상승했을 뿐, 요지 부동이었다. 특히 언어에서 넉다운을 맞았다. 6월 평가원 결과까지 이런 결과를 맞이했다는 건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도 성공해야했으며 나도 성공해야했다. 위에서 언급한 첫째는 실패로 돌아갔고, 둘째를 구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무시하면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담임도 당시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듯 보여, 먼저 담임에게 이 과정에 대해 말을 꺼내고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이 과정과는 별개로 공부 순간에는 공부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꿈, 나를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머릿속에 떠오르면 잠시라도 집중을 놓칠 수 없었다.

     

    7월

     이대로 가다간 그녀가 나중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마음에서 떼네기 위해 무시 일변도로 나갔다. 알면서도 모른척 일부러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모든 역량을 공부에 투입했으며 그동안 질문하기로 모아뒀던 것을 당직 선생님과의 질의의 과정을 통해 해결 수순을 밟았다. 주말에는 모의고사 자체 풀이를 진행하였으며, 수능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하였다. 수리 영역과 언어 영역은 교육청 모의고사 위주로 풀었다.

     

    8월

     언, 수, 외는 기본 뼈대를 완성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주말에는 문제 풀이를 병행했으며 슬럼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시라도 집중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이와는 별개로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눈에 밟혔다. 무엇 때문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무시하는 이유를 알아줬으면 좋으련만, 이미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남아있질 않았다. 생각했던 해결 구상 등이 수포로 돌아가고 다가가기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담임이 타인에게 검증도 안된 프라이버시를 발설한 것이었다. 루머는 삽시간에 퍼졌고,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 마다 귓가에 들리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일차적으로 담임에게 마음 속으로 분노했으며 이차적으로는 자중하기를 원했던 그녀를 원망했다. 더욱이 수업 시간에는 강사의 눈망울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어느덧 나의 눈물샘도 자극되기 시작했다. 이제 수업 시간의 집중도까지 훼손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를 향한 동정 아닌 동정의 얘기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진정 위로를 위한 동정이 아닌 흥미거리의 동정이라면 그런 동정은 개인을 향한 존중을 위해서라도 없어야했다. 담임에게 하소연을 해봐도 돌아오는 건 질책이었다. 어처구니 없었다. 강사의 자질과 인성에 대해 의심을 푼게 된 것이 이때부터다. 이제 다가가는 것, 무시하는 것 모두 불가능하다면 나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내가 학원을 나가는 것이었다.

     

    9월

     9월 모평이 끝난 당일, 학원을 나가기로 결심을 굳힌 상황에서 저녁 자습 시간에 9월 모의 시험지를 들추며 공부하려니 갑자기 눈물이 스멸스멸 나오기 시작했다. 토요일, 이성관계 문제로 학원을 나가겠다고 담임에게 말했다. 그러자 담임은 나에게 "정신차리라고 이 사람아" 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공중분해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 담임의 말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진정, 선생이 맞다면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나의 고충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들어야하지 않았을까? 이미 며칠 전부터 학원 나가기로 결심한 나는 매일 몇 개씩 보관되어있던 책들을 미리 집에 옮겨두었다. 복잡한 심경에 수업 시간에 눈물을 쏟았다. 잠시 후 자습 시간에 나를 불러냈고, 거기서 언쟁은 더욱 촉발되었다.

     

     담임은 이성관계 문제는 터무니 없는 것이라며 나무랐다. 분노의 클라이맥스까지 이르렀다. 나는 조목조목 반박했으나 의심만 하지 말고 근거를 가져오라는 해괴망측한 언변을 토해냈다. 거기다가 그녀를 데리고 오겠다는 되지도 않는 엄포도 내놨다. 자, 당시 과정에 대한 근거를 내가 무슨수로 제시하는가? 그녀를 데리고 오면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미 당시 과정을 상세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허위로 엄포를 내놓는단 말인가? 분노는 극에 치달았고 나는 프라이버시 발설에 대해 공개적으로 따졌다. 그러자 담임은 당황한 기색을 1초간 내비치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더니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며 교무실로 데리고 갔다. 교무실에서 학생 신상 파일을 보여주고, 감히 어른에게 대든다며 나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정말 어이 없는 순간이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이 딱 통용되었던 장면이다. 그 때 건너편 한 선생님이 그래서 말을 하면 안된다는 뉘앙스의 지나가는 말 처럼 한마디 내뱉었다. 그때 담임은 약간은 당황했는지 뚫어져라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제적이 안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라, 엿 같은게 뭔 줄 아니? 감정을 표출할 수 없다는 거야" 라는 적반하장의 말을 쏟아냈다. 내가 이러한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것 자체가 수치로 느껴졌다. 그리고 눈물이 주루룩 쏟아졌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분노와 슬픔의 감정 속에 죄송하다고 말했다. 무엇이 죄송한지 모르는, 그러한 상황에서 말이다. 더욱 분노한 것은 담임이 일종의 오해라며 아버지에게까지 거짓말 한 것이었다. 자신의 일신을 위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이 지경까지 이르니, 그녀도 담임도 믿을 수 있는 사람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이를 갈고 학원에서 나왔다. 사교육 강사의 태생적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면서.

     

    10월, 수능 직전

     9월 초에 학원에 나왔으니 약 100일도 안되는 시점이었다. 시간 자체가 촉박했다. 이제 타이든 자의든 간에 독학 재수로 공부 체재가 전환되었다. 문자를 제외한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단절하고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며 공부했다. 아침엔 언어와 언어 인강 학습, 점심엔 수리와 외국어 학습, 저녁 무렵엔 언, 수, 외, 사탐 총정리 시간을 가졌다. 독학으로 인해 시간 확보가 널널해지자, 그동안 기출되었던 모든 사설 수리 문제를 프린트하여 매일 60문제씩 고강도로 풀었다. 언어는 매일 아침 기출 2회씩, 외국어는 EBS 교재의 총정리와 어법 문제 풀이, 수리는 끊임없는 양치기를 목표로 밀고 나갔다. 사탐은 기출과 EBS를 총정리하였다. 이 무렵 작년 떨어졌던 K대의 미디어학부 1차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엔 합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약간은 들떴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렇게 도서관 개관부터 폐관의 시간까지 공부에 거의 미쳤다.

     

    수능 당일

     예상과는 다르게 언어가 '물'난이도로 출제되었다. 화학 지문 3점 문제를 제외하고 쉬웠던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쉬는 시간엔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정말로 감사한 과자, 사탕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수리 영역은 증명 과정의 문제에서 계산 오류로 당황해서 꼬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30번을 제외한 모든 문제는 풀 수 있었으나 찜찜했다. 외국어 영역은 막판에 고친 두 문제가 화근이 되었다. 사탐의 경우, 정치는 백분위 98, 한국지리 백분위 94 정도로 치렀다. 근현대사는 자신만만했던 기대와 달리, 백분위 90으로 저조하였다. 가채점 결과 평균 백분위 93 정도였다. 언, 수, 외 특정 과목이 망했다기 보다는 각각 과목에 계산 오류 등의 미스가 나 예상과는 달리 약간은 저조하였다.

     

     이제 수시 논술과 면접 대비에 전력 투구해야 했다. 논술 답안 등을 암기, 인강을 들으며 실력을 보충해나갔고 그렇게 S대, K대, H대 등의 논술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이후 K대 면접을 치렀다. 안타깝게도 수시에서 모든 대학이 탈락되었다. 이제 저 백분위의 성적으로 정시에 어딜 넣을까 고민했다. 우선 적성이라고 생각하는 언론 계열 학과를 최우선 대상으로 올려놓고, 그 후순위로 경영과 법학 전공을 염두해두었다. 하지만 정시 원서 접수 과정에서 언론학은 자학 등을 통해 일부 터득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경영과 경제는 전문 교수 지도 하에 수학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자식 습득 과정에 옳다고 판단, 국민대 경영학과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최선을 다했고, 기대엔 미치지 못했지만 대학생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리고 정시에서의 높아지고 있는 입시 결과를 뼈저리게 절감했으며 노력의 가치를 습득했다. 또한 위기의 몇몇 순간에서 눌러앉아 위기를 회피하기 보다는 위기의 순리를 거스르며 돌파해나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심리적 타격을 입고, 고생하였다. 그러나 체험, 그 자체만으로도 재수의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잠들기 전, 그녀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한다. 담임이 그녀를 불러내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그녀는 사실을 부정하고 선생과 갑을 상하관계의 한계에 봉착하는 결과를 선택했을까? 무사히 수능을 치러, 본인이 원하는 꿈을 성취했을까? 혹여나 성취하지 못했다면 내 책임도 일정부분 있지는 않았을까? 당시 내가 어떻게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잘 지내고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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