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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과 카페의 소중한 결합 - 노원문고 더 숲생각/단상 2017. 2. 12. 14:28
지난 휴가 때 내심 환호성을 지른 게 있다. 동네에 영화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런데 문을 연 영화관은 좀 특별하다. 영화관의 취지부터 다르다. 멀티플렉스에서 외면한 영화를 틀겠다는 것이다. 딱 보면 CGV 아트하우스나 메가박스 아트나인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건 노원에 없다. 평론가들이 극찬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영화를 보려면 명동이나 강남까지 가야 한다. 이 영화관 덕분에 이제 동네에서도 시간과 장소의 커다란 구애 없이 좋은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걱정은 좀 된다. 영화관이 들어선 곳은 노원구 통틀어 요지다. 그만큼 유동인구도 많고 임대료도 비싸다. 종전엔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로 손님이 바글거렸던 곳이다. 어디 대기업이 후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지역 서점인 노원문고에서 만든 것이다. 그러기에 이 영화관이 임대료의 부담이나 여러 위험요인을 얼른 떨쳐버리고 오랜 기간 사랑받으며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 영화관은 구성의 일부분이다. 그 구성엔 커피와 먹을거리를 파는 카페가 있고 서점이 있으며 음반매장도 있다. 서점은 카페 이용자라면 누구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서가로 구성됐다. 팟캐스트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도 있다. 이를 통틀어 '노원문고 문화플랫폼 더숲'이라고 명명했다. 노원의 유일무이한 미디어 카페의 출현인 셈이다. 영화는 물론 서점에서 큐레이터의 손길을 거쳐 서가에 진열된 책들도 읽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간 노원에 변변한 책 카페 하나 보이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기쁨의 연속이다.
노원은 서울에서 배후지역으로 전형적인 베드타운을 형성해왔다. 사회 초년생은 물론, 유아, 청소년 자녀들로 구성된 가구가 많다. 이 때문에 교육열이 강북에서 비교적 높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 지역 10대와 20대들에겐 동네에 난립한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에 치인 나머지, 문화를 접하고 향유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문을 연 '더 숲'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번 '더 숲'을 만든 것도 그렇고, 노원문고의 행보를 볼 때면 쉽지 않은 결단을 보게 된다(나중에 기회되면 여느 경로를 통하여든 상세히 후술하겠지만). 예컨대 노원문고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서점이 문을 닫자 인수를 감행해 지역에서 서점의 영역이 축소되는 것을 막아왔다. 중계동에 있는 노원문고 분점 역시 본래 중계세일학원 계열의 세일서점이었으나 인수된 케이스다. 지역서점으로서의 의무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번 휴가부터 멀리 가지 않고 여기서 영화를 본다. 멀티플렉스가 며칠, 몇 주 만에 상영관을 닫아버리는 것과 달리, 정기휴가 기준 6주가 지나도 여기는 일부 영화의 상영을 멈추지 않는다. 전역하고나면 여기서 많은 영화를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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