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
영화 기생충영화 2020. 3. 20. 16:31
영화 기생충. 장면마다 체제와 계급, 상황의 모순을 응축했다. 물론 리얼리즘적이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상징 자본인 학위를 대체하는 과정과 순진무구한 인물을 이용한다는 점은 확률이 지극히 낮아 보인다는 점에서 영화적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구축해놓은 세계는 영화상으로만 박제하기 어려운 현실의 연장선이다. 지상과 지하의 수직적 분리, 생의 최전선에서 생기는 냄새에 대한 폄하는 사회가 마주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은 그럴듯한 예우, 온화해 보인다는 수식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응축된 모순을 응시하지 않는 한 존엄은 한낱 것으로 언제든 치부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그 점을 기생충처럼 주제로 짚은 영화는 근래 없었던 것 같다.
-
영화 생일영화 2020. 3. 20. 16:30
좋은 영화의 기준 중 하나를 고르라면 개별적 삶을 깊게 다루는 것을 꼽겠다. 적지 않은 영화들이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서사의 감동을 위해 동원한다는 느낌을 준다. 가령 현실을 다루면서도 감정은 과잉하는 경우다. 감정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인위적으로 보이면 과잉이 일어난다. 영화 은 세월호 사고의 슬픔을 다루면서 과잉에 빠지지 않았다. 넘겨짚지 않고 일상을 바라본 결과다. 과잉은 다른 무엇보다 관객을 잡아두기 위한 목적이 뚜렷하다. 그러나 서사를 완결하더라도 괴리를 낳는다. 신파를 긍정하지만 과잉은 경계하는 이유다.
-
박광수 감독 연구(2) ‘미학’ 청년에서 ‘영화인’으로영화 2020. 3. 19. 21:51
박광수는 강원도 속초에서 1955년 1월 22일에 출생하여 중학교 때까지 속초에서 자랐다. 이후 부산으로 상경,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미학’에 눈을 뜬 박광수는 미술반에서 활동을 하다가 백남준과 앤디워홀에 관심을 가지고, 철학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1976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한 박광수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에서 미술에 회의를 느끼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영화가 매력적이라고 판단, 영화에 본격 발을 들인다. 시작은 1979년 ‘얄랴셩’이었다. ‘얄랴셩’은 서울대 공대 안에 생긴 자그마한 서클이었다. 1970년대 탈춤과 마당극이 대학생의 의식을 대변했다면, 1980년대는 비교적 주류 대중문화로 취급받던 영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려 했다. 이 전환점에서 박광수는 영화에 길을 들이게 된 것..
-
국가부도의 날영화 2020. 3. 19. 15:46
국가 부도의 날. 얘기가 이미 나온 것처럼, 늦은 밤 본 영화의 짜임새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인물은 평면적이고, 대결 구도도 도식적이며 세 분파의 흐름이 유기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짚을 부분이 있다면 극의 서사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전화국에 불이 나자 통신망이 마비되는, 잠재된 위험이 현실화되자 위기관리의 불안이 느껴지는 2018년과 경제위기에 무력했던 1997년은 오버랩될 수밖에 없다. 위기 대처에서 점점 국가의 한계는 뚜렷하지만 이를 보완할 언론도 위태해 보인다. 영화에선 유독 경제위기 당시 언론의 리포트가 반복되는데, 부도와 실직, 위기를 다룬 기사가 받아쓰기처럼 재생된다. 반면, 곪아가는 경제에 대한 지적은 부실해 보인다. 관변을 향한 의존적 쓰기의 결론은 우리가 아..
-
보헤미안 랩소디영화 2020. 3. 19. 15:45
어두운 뉴스만 보고 있자면 자칫 비관론자나 염세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뉴스도 뉴스 나름이다. 어느 목표에 따라 열정 가득한 인물평을 보고 있노라면 에너지가 샘솟곤 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런 인물평을 영상으로 풀어낸다. 물론 열정이 지나치게 충만하면 좌충우돌하기 쉽다. 그러나 그 열정으로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폄하만 할 것은 아니다. 영화가 재현한 머큐리의 음색과 작곡 과정은 울렁이는 물결의 연속이며, 정체로 오염이 될 수 있는 물길을 트는 작업이었다. 그에 대한 찬미와 함께, 퀸의 노래가 지금껏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박광수 감독 연구(1)영화 2020. 3. 19. 14:41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이전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 아래 단절과 억압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을 일종의 치부 정도로 여기던 시각이 있었다. 사업주로부터 임금을 떼먹혀 노동청에 피해를 신고해도 별 구제를 받지 못하던 노동자, 분단의 간극 가운데 그만 불손 세력으로 낙인이 찍혀 억압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됐지만 성장의 과실에서 소외돼 허덕이던 계층까지. 민주화 이전 한국 사회는 ‘경제 성장’과 ‘정권 안위’라는 명분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사소히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1987년 봇물처럼 터진 민주화 항쟁과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은 그러한 경향의 지속을 막아보려는 사회적 몸부림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기조의 변화는 한국 영화의 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80년대..
-
기본소득 관련 자료생각/단상 2020. 3. 19. 14:36
첫 번째는 애초 원리에 충실한 ‘완전’ 기본소득. 근로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적정한 금액을 지급한다. 대표적 사례는 스위스에서 제시된 ‘월 280만원 기본소득’. 금액은 스위스 상시노동자 평균소득의 3분의 1 수준으로, 한국에 적용하면 월 110만원이다. 이를 위해선 대략 연 600조원, 올해 중앙정부 총지출 400조원의 1.5배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낮은’ 기본소득. 이재명 성남시장이 모든 국민에게 월 2만5000원씩 지급하겠다는 토지배당, 작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제안한 ‘월 30만원 기본소득’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본소득의 원리를 담았다는 상징성을 지니지만 금액이 적어서 재정 대비 실효성이 미약하다. 월 2만5000원 기본소득을 위해 사용될 연 15조원을 취약계층·아동·노인 등 특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