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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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치.(9월 4일)영화 2018. 10. 7. 17:58
영화 서치. 문제의 원인을 낳은 것이 해결책으로도 쓰이는 디지털의 양면성을 그려냈다. 주배경은 실종된 주인공과 아버지의 노트북 배경화면이지만 영화가 그려낸 디지털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카메라 구도를 직접적으로 장면에 옮기지 않더라도 헬기에서 중계되는 라이브 뉴스, 디스크에 기록되는 소형 카메라, 소셜미디어로 상황을 지켜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은 디지털 세상 가운데 관찰과 관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날을 표상하는 것만 같다. 스토리만 보면 반전 있는 여느 실종 사건처럼 느껴지지만 디지털 문법만으로 장면을 직시한 영화는 또다른 도전작임엔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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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8월 11일)영화 2018. 10. 7. 17:57
영화 공작. 첩보물이지만 총성 없이도 긴장감을 배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인물들이 내딛는 땅 밑이 언제든 꺼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남북의 대치와 이에 얽힌 맥락이 콤팩트한 구도로 구현되면서 말의 향연으로도 서사가 직조될 수 있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까지 담으려고 했다 정작 작중 대화가 널널해진 영화 강철비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다만 후반부에 북풍 공작을 묘사하는 과정은 팽팽했던 긴장감을 느슨하게 할 정도로 지나치게 위선적이었다. 그럼에도 곁가지까지 신경 쓰다 서사가 헐거워지고 마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은 집중력을 높인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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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컨버세이션> - 자유와 부자유, 역설과 촬영 구도를 중심으로영화 2018. 9. 30. 14:09
자유는 또 다른 부자유를 양산한다. 자유의 확장은 다른 이의 자유를 중첩시키고, 침해의 경우를 빚곤 한다. 그래서 자유주의에서조차 당위는 ‘자유’에 있지만 핵심은 자유의 견제를 통한 재산권과 기본권의 인정에 있다. 자유는 자유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견제로 이뤄질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굳이 사상적 뿌리에 자유의 연원을 찾지 않더라도, 견제가 없는 자유는 필시 자유의 악화를 불러온다는 걸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관음적 시선을 보내는 경우, 이를 행동하는 사람은 ‘볼거리’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시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불안감과 행동의 제약을 느끼게 된다. 자유의 확장은 역설적이게도 자유의 총합이 확장되는 게 아니라 특정 누군가의 전유물로 쓰일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규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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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산딸기> - 꿈과 이완, 모호함을 중심으로(4.26)영화 2018. 9. 30. 14:08
꿈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것이다. 수면의 상태에서 환영에 따라 빚어지는 상황과 맥락들은 말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어떤 것이다. 두 가지는 분명하다. 현실에서의 인식이 꿈에 투영된다는 것이고, 시간의 축적에 따라 꿈의 내용이 변주된다는 점이다. 꿈과 현실은 괴리적인 동시에 분리되지 않은 무엇이다. 시간의 흐름은 현실을 인식하는 지평을 넓히고, 꿈의 소재를 키운다. 그것은 악몽이 될 수 있고, 예지몽일 수 있으며 길몽이 될 수 있다. 꿈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만큼이나 해석의 분분함을 낳으며 다층적이고, 세부적이다. 심상이 다른 주체들마다 꿈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꿈은 인생을 반추하는 기회일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의 는 78세 이삭 보리(빅토르 시외스트롬)가 꾸는 꿈의 복잡성이 현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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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야스쿠니>, ‘직시’의 실종과 그로 인한 예감(과제 제출)영화 2018. 6. 30. 19:38
역사를 직시한다는 건 안다는 것과 또 다른 논의의 범주다. 앎이 역사의 뭉치를 펼쳐 사실과 맥락을 아는 것이라면, 직시는 자기 성찰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역사적 사실을 안다는 건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서 어찌 보면 쉽고도 간편한 경우에 속할 수 있으나, 사실의 직시는 편협과 아집, 자기 관념에 빠진 나머지 생기는 오류를 제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부단한 작업 없이는 사실의 직시는 요원하며, 이로 인해서 역사적 사실을 조망하는 것 또한 입맛에 따라 왜곡을 부를 소지가 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결국 동시대인뿐 아니라 후대가 짊어야 할 몫이 됨은 물론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는 관조적 입장에서 역사의 직시를 묻는다. 카메라는 개입을 주저한다. 벌어지는 상황을 따라갈 뿐이다. 상황의 장소는 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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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야마부시코>,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의 ‘힘’을 어디에(2017,10 과제 제출용)영화 2018. 1. 28. 23:27
자연은 만고불변의 법칙으로 순환한다. 봄이 생동하고 장렬한 여름이 찾아오고, 한기가 슬며시 느껴지는 가을이 오더니 추위가 온몸을 가로지르는 겨울이 온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 변환이 가능한 게 아니다. 자연의 섭리는 생물종의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인간은 순환하는 자연에 순종할 뿐이다. 거대한 체계 아래 무력함만이 엄습하는 것처럼. 그 체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영위할 방법은 일단 사는 것이다. 죽는 것도 알아야 죽는다. 그런데 살기 위해선 먹을 게 필요하다. 먹는 행위와 먹을 것을 구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자연은 여기에 보조를 할 뿐이다. 먹는다는 건 인간이 보유한 가장 원초적 욕구다. 이 욕구에 자유로울 인간은 없다. 영화 는 먹는다는 ‘근원적 행위’부터 인간의 욕구를 고찰한다. 욕구엔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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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 푸이, 비판 가운데 위로를 건네고 싶은 이유(2017.9.18)영화 2018. 1. 27. 19:40
바깥은 학생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소리가 들려오는데 정작 궁궐 안의 황제는 이 소리를 듣고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미 궁궐 바깥은 대통령이 있는 공화국이다. 황제의 촉수가 뻗질 않는다. 황제의 영역은 오직 궁궐 안이다. 무기력한 궁궐에 비애감이 젖어든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에 대한 얘기다. 영화 는 말마따나 자금성에서 결국 짐을 싸서 나와야 했던 푸이의 생애를 그린다. 즉위식이던 날, 황궁 앞에 신하들이 도열하고 절을 올리지만 멋모르는 3살 꼬마 황제는 가만있질 못하고 쏘다닌다. 이 꼬마는 황제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환관으로 하여금 먹물을 마시라는 등의 기상천외한 지시를 내리지만 이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먹먹함에 빠진다. 그럼에도 그러한 슬픔은 오롯이 푸이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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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생>, 아들과 딸은 누구를 통탄해할까(2017.9.18)영화 2018. 1. 27. 19:35
시대가 격동하면 거기에 부속된 개인의 삶도 요동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인의 삶은 집단의 구호에, 사회의 단결에 쉽사리 묻히고 만다. 영화 은 1940년대 이후 정세가 급변해왔던 중국의 시대상을 어느 가족을 통해 관조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개인의 삶들을 길어 올린다. 1940년대와 1950년대, 1960년대를 조망하는 영화는 각각의 시대상에 따라 가정의 삶도 급변하는 면모를 고스란히 내보인다. 1940년대 국공내전이 발발하던 시기, 부귀는 지주의 아들이지만 도박에 빠져있다. 아내의 만류에도 도박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집을 홀라당 잃고 만다. 아내가 떠남은 물론이요, 아버지까지 충격으로 횡사했다. 이는 지주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부귀의 변곡점이기도 하다. 도박은 멀리하고 그림도구를 얻어 생..